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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개혁, 일본의 강요에 의한 '타율적 개혁'이라는 오명을 넘어서― 조선 내부 개혁 세력의 이상과 근대 국가를 향한 첫걸음

갑오개혁, 일본의 강요에 의한 '타율적 개혁'이라는 오명을 넘어서― 조선 내부 개혁 세력의 이상과 근대 국가를 향한 첫걸음 ⚖ 우리가 알고 있는 ‘갑오개혁’은 공정한 평가일까?우리 역사에서 갑오개혁(甲午改革)만큼 상반된 평가를 받는 사건도 드뭅니다. 대부분의 교과서에서 이 개혁은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하에 시작된 타율적 개혁”이라는 굴레에 갇혀 있습니다. 실제로 일본의 군사적 압박 속에서 시작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하지만 여기서 질문을 던져봐야 합니다. 과연 조선은 아무 준비 없이 외세의 강압에만 움직인 ‘허수아비’였을까요? 만약 그랬다면, 신분제 폐지와 과거제 폐지 같은 혁명적인 개혁안들이 어떻게 그토록 신속하게 나올 수 있었을까요?이번 포스팅에서는 '타율성'이라는 프레임에 가려져 있던 ..

한국사 재해석 2025.06.13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 과연 실패한 근대화의 상징일 뿐인가?― 제국주의 침략기, ‘자주 외교’의 마지막 몸부림으로 다시 보기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 과연 실패한 근대화의 상징일 뿐인가?― 제국주의 침략기, ‘자주 수호’의 마지막 몸부림으로 다시 보기 🏯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전국 각지에 세워졌던 척화비(斥和碑)의 이 서슬 퍼런 문구는, 흥선대원군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교과서에서 그를 종종 ‘근대화를 거부한 완고한 지도자’, 혹은 쇄국정책으로 조선을 고립시킨 인물로 배워왔습니다. 그의 이름에는 늘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독재자’라는 그림자가 따라붙습니다.하지만 질문을 던져봅시다. 그는 정말로 시대의 흐름을 몰랐던 무능한 지도자였을까요? 아니면, 포탄을 앞세워 통상을 요구하는 제국주의의 거센 파도 앞에서, 조선의 ‘자주’를 지켜..

한국사 재해석 2025.06.12

광개토대왕의 정복 전쟁, 과연 한민족 최고의 영웅 서사인가?― 피정복민의 고통과 문화적 충돌을 중심으로 한 비판적 고찰

광개토대왕의 정복 전쟁, 과연 한민족 최고의 영웅 서사인가?― '영광의 비석' 뒤에 가려진 피정복민의 고통과 문화적 충돌 1. '영토 확장', 그 화려한 수식어에 던지는 질문우리는 광개토대왕을 '한민족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개척한 위대한 정복 군주'로 배워왔습니다. 그의 이름 '廣開土(광개토)' 자체가 드넓은 땅을 열었다는 뜻이니, 그의 업적은 이름 그 자체로 증명되는 듯합니다. 실제로 그는 백제와 신라를 압박하고, 북방의 거란, 숙신, 동부여를 정벌하며 고구려를 동북아시아의 명실상부한 패권국가로 만들었습니다.하지만 우리는 그 '영광'의 이면을 얼마나 깊이 들여다보았을까요? 영토 확장의 뒤편에는 필연적으로 정복당한 사람들의 눈물이 존재합니다. 오늘 이 글에서는 영웅 서사라는 화려한 조명 뒤에 가려진 ..

한국사 재해석 2025.06.11

삼국통일, 신라의 외세 동맹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최선’이었나?

삼국통일, 신라의 외세 동맹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최선’이었나?― 고구려나 백제가 통일했다면 달라졌을 한반도의 운명1. '통일'이라는 이름의 영광, 그 이면의 질문우리는 학창 시절부터 신라의 삼국통일을 우리 민족사 최초의 위대한 대업으로 배워왔습니다. 뿔뿔이 흩어져 있던 세 나라를 하나로 합쳐, 오늘날 '한민족'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는 오랫동안 통일 서사의 중심을 차지해 왔습니다.하지만 이 '통일'이라는 단어에 우리는 너무 익숙해진 것은 아닐까요? 만약 패배한 고구려나 백제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것은 과연 영광스러운 '통일'이었을까요, 아니면 외세를 등에 업은 '정복'이었을까요? 이 글에서는 신라의 삼국통일이 가진 명분과 한계를 냉정하게 분석하고, '만약 고구려나 백제가 통일했다면?'이라는 대담한 ..

한국사 재해석 2025.06.10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알려지지 않은 집현전 학자들의 반대와 논리― 최만리 상소문을 중심으로 본 훈민정음 창제의 철학적·정치적 갈등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알려지지 않은 집현전 학자들의 반대와 논리― 최만리 상소문을 중심으로 본 훈민정음 창제의 철학적·정치적 갈등 📌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모두가 찬성했을까?오늘날 우리는 세종대왕을 "위대한 성군", "민본정신의 상징", 그리고 "한글의 창제자"로 기억합니다.그러나 훈민정음이 세상에 등장하던 15세기 조선 초기, 세종의 독자적 문자 창제는 찬란한 혁신이자 동시에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었습니다.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사실이 있습니다.당시 조선 지식인들의 상당수, 심지어 세종의 곁에서 학문을 논하던 집현전 학자들조차 한글 창제에 반대했다는 점입니다.그 중심에 있던 인물이 바로 최만리(崔萬理)였습니다.그의 상소문은 단순한 반대 의견이 아니라, 정치적·철학적 관점에서의 강한 이의 제기였기에 ..

한국사 재해석 2025.06.09

새마을운동의 재평가: 경제 발전의 원동력인가, 독재 정권의 유산인가?― '하면 된다'는 신화와 그 과정에서 희생된 공동체 문화와 민주주의 가치

새마을운동의 재평가: 경제 발전의 원동력인가, 독재 정권의 유산인가?― '하면 된다'는 신화와 그 과정에서 희생된 공동체 문화와 민주주의 가치 🧭 서론: 우리 기억 속 '새마을운동', 빛과 그림자의 이중주"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우리에게 익숙한 이 노래는 1970년대 대한민국을 휩쓸었던 새마을운동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근면, 자조, 협동'이라는 구호 아래, 가난을 극복하고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를 외쳤던 시대의 자화상으로 기억됩니다.분명 새마을운동은 보릿고개를 넘어서는 경제 발전의 초석을 다졌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습니다. 하지만 그 눈부신 성장의 그늘 아래, 이 운동이 박정희 유신 독재 정권의 통치 이데올로기로 기능했으며, 그 과정에서 전통 공동체의 가치와 민주주의가 훼손되었다..

한국사 재해석 2025.06.08

임진왜란 승리의 진짜 요인, 이순신 신화 너머의 민중과 의병― 영웅 서사에 가려진 백성들의 항쟁과 저항의 역사

임진왜란 승리의 진짜 요인, 이순신 신화 너머의 민중과 의병― 영웅 서사에 가려진 이름 없는 백성들의 위대한 항쟁사 📌 임진왜란, 단지 '한 영웅의 전쟁'이었을까?임진왜란을 이야기할 때, 우리의 뇌리에는 가장 먼저 거북선을 이끌고 불패의 신화를 쓴 영웅, 충무공 이순신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의 위대한 업적은 조선을 구한 결정적 요인이었으며, 세계 해전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기적과도 같았습니다.하지만 이 7년간의 처절한 전쟁이 과연 한 명의 영웅만으로 승리할 수 있었을까요? 임금이 도성을 버리고 의주로 파천하고, 정규군인 관군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던 절망의 순간, 꺼져가던 조선의 운명을 되살린 것은 과연 누구였을까요?오늘 우리는 ‘이순신 신화’라는 눈부신 빛에 가려져 있던 또 다른 승리의 주역들, ..

한국사 재해석 2025.06.07

고구려-수 전쟁, 동아시아의 '세계대전'으로 다시 읽기― 단순한 민족 방어전이 아닌, 동아시아 패권을 둘러싼 국제전의 관점에서

고구려-수 전쟁, 동아시아의 '세계대전'으로 다시 읽기― 단순한 민족 방어전이 아닌, 동아시아 패권을 둘러싼 국제전의 관점에서 1. 고구려-수 전쟁, 단순한 '침략 vs 방어'였을까?역사 교과서에서 고구려-수 전쟁은 흔히 "고구려의 대수국 방어전" 또는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으로 압축돼 서술됩니다. 민족의 위기를 지혜로 막아낸 을지문덕의 이야기, 100만 대군이 고구려의 전략 앞에 무너졌다는 승리의 신화는 오랫동안 민족 영웅 서사로 자리 잡아 왔습니다.하지만 이 전쟁은 과연 그렇게 단순한 구조였을까요? 제가 이 주제를 깊이 파고들며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이 전쟁이 단지 한 나라의 생존을 위한 방어전의 차원을 넘어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중국 대륙과 한반도 북방을 아우르는 동아시아 전체의 세력 구도가..

한국사 재해석 2025.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