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알려지지 않은 집현전 학자들의 반대와 논리
― 최만리 상소문을 중심으로 본 훈민정음 창제의 철학적·정치적 갈등
📌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모두가 찬성했을까?
오늘날 우리는 세종대왕을 "위대한 성군", "민본정신의 상징", 그리고 "한글의 창제자"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훈민정음이 세상에 등장하던 15세기 조선 초기, 세종의 독자적 문자 창제는 찬란한 혁신이자 동시에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당시 조선 지식인들의 상당수, 심지어 세종의 곁에서 학문을 논하던 집현전 학자들조차 한글 창제에 반대했다는 점입니다.
그 중심에 있던 인물이 바로 최만리(崔萬理)였습니다.
그의 상소문은 단순한 반대 의견이 아니라, 정치적·철학적 관점에서의 강한 이의 제기였기에 오늘날 다시 조명해볼 가치가 있습니다.

🏛 최만리와 집현전, 왜 한글에 반대했나?
🧾 ‘최만리 상소문’의 핵심 논리
최만리를 중심으로 한 유학자들의 주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성현의 문자”를 버리고 어리석은 문자를 만들었다
- 유교의 핵심은 공자의 가르침과 고전 경전에 있습니다.
- 이 고전은 한자로 기록되어 있었고, 이를 해석하고 공부하는 것이 조선 지식인의 핵심 덕목이었죠.
- 최만리는 세종의 문자 창제를 “성현(공자)의 문자를 버리는 행위”로 간주했습니다.
- 이중 문자 체계는 혼란을 초래한다
- 최만리는 상소문에서 “나라에 문자가 두 개면, 백성의 마음도 두 갈래로 갈라진다”고 했습니다.
- 이는 국가 정체성과 사상의 통일성을 우려한 것입니다.
- 언문은 천한 자들이나 쓰는 것이다
- 조선은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고, 문자 사용 역시 양반·문신 계층의 특권이었습니다.
- 한글(언문)은 여성과 하층민이 쉽게 읽고 쓸 수 있었기에, 지배층 입장에서는 권위와 위계질서를 위협하는 존재였습니다.

🧠 세종은 왜 반대를 무릅쓰고 훈민정음을 만들었나?
세종은 이러한 반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443년 훈민정음 창제를 시작했고, 1446년 반포에 이르렀습니다.
🎯 세종의 철학: ‘애민’과 ‘실용’
“내가 이 문자를 만든 것은 백성들이 말은 있으되 문자로 표현하지 못하는 고통을 덜어주기 위함이다.”
―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
세종은 문자를 특권층의 도구가 아닌, 민생을 위한 수단으로 본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통치 기술을 넘어, 조선 왕조 초기 지배 철학의 전환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 정치 갈등의 본질: 문화권력 vs 민중성
세종과 최만리의 갈등은 단순한 문자 논쟁이 아닙니다.
그 이면에는 정치 권력과 문화 권력의 충돌, 귀족 중심의 유교 사회 vs 민본을 강조한 실용주의 통치의 대립이 숨어 있습니다.
- 최만리: “한자는 문명의 정통이다. 새로운 문자는 질서를 해친다.”
- 세종대왕: “어느 문자든 백성에게 유익하다면 그것이 옳은 길이다.”
이 충돌은 오늘날로 치면, 지식 엘리트의 기득권 보호 논리와 대중을 위한 지식의 민주화 노력의 대립과 유사합니다.
훈민정음 창제는 문자 체계의 변화만이 아니라, 사회질서와 권력 구조를 흔드는 사건이었던 셈입니다.
📚 참고문헌과 연구자료
- 김슬옹, 『훈민정음의 정치학』
- 이기백, 『한국사 시민강좌』
- 최만리, 「상소문」, 『조선왕조실록』 세종 25년 2월
- 이강래, 「훈민정음 창제 반대 논리 분석」, 『한국문자학회지』 제13권
- 조광, 『조선 정치사 연구』
✍️ 나의 시선: 반대가 있어 더 위대했던 한글
이 주제를 공부하면서 느낀 것은, 한글이 단순한 문자 발명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안에는 세종대왕의 통치 철학, 조선 초기 지식인들의 사상적 한계, 그리고 민중의 잠재된 학습 욕구가 녹아 있습니다.
최만리를 비난하기보다는, 그의 시선을 통해 당시 유학자의 논리와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반대가 있었기에, 세종대왕의 결단은 더 위대하게 느껴지고, 훈민정음은 단지 문자 그 이상이 되었다고 느껴집니다.
💬 함께 생각해보기
오늘날 새로운 기술이나 제도에 대한 반대도 과연 옳지 않다고만 할 수 있을까요?
훈민정음의 창제처럼, 반대와 갈등 속에서도 새로운 길은 만들어집니다.
여러분은 한글 창제에 대한 최만리의 입장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댓글로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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