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개토대왕의 정복 전쟁, 과연 한민족 최고의 영웅 서사인가?
― '영광의 비석' 뒤에 가려진 피정복민의 고통과 문화적 충돌
1. '영토 확장', 그 화려한 수식어에 던지는 질문
우리는 광개토대왕을 '한민족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개척한 위대한 정복 군주'로 배워왔습니다. 그의 이름 '廣開土(광개토)' 자체가 드넓은 땅을 열었다는 뜻이니, 그의 업적은 이름 그 자체로 증명되는 듯합니다. 실제로 그는 백제와 신라를 압박하고, 북방의 거란, 숙신, 동부여를 정벌하며 고구려를 동북아시아의 명실상부한 패권국가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영광'의 이면을 얼마나 깊이 들여다보았을까요? 영토 확장의 뒤편에는 필연적으로 정복당한 사람들의 눈물이 존재합니다. 오늘 이 글에서는 영웅 서사라는 화려한 조명 뒤에 가려진 피정복민의 시선으로, 광개토대왕의 정복 전쟁을 비판적으로 고찰해보고자 합니다.
[광개토대왕릉비의 웅장한 모습]

2. 승자의 기록, 광개토대왕릉비: 영광의 증거이자 고통의 낙인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가장 웅변적으로 증명하는 자료는 아들 장수왕이 세운 광개토대왕릉비입니다. 높이 6.39m에 달하는 거대한 비석에는 그의 정복 활동이 빼곡히 새겨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비문은 승자의 기록이기에, 행간에 숨겨진 의미를 읽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비문에 새겨진 정복의 기록
비문에는 "신묘년에 왜를 격파하고 백잔(백제)을 굴복시켰다", "백제를 공격하여 58개 성, 700여 개 촌을 점령했다"는 등 화려한 전과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숫자는 단지 군사적 성과가 아닙니다. 700여 개 촌락에는 실제로 삶의 터전을 일구며 살아가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고구려의 지배 아래 놓였을 것입니다.
‘수묘인(守墓人)’이라는 이름의 피정복민
비문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수묘인(守墓人)'에 대한 기록입니다. 비문에는 광개토대왕의 능을 지키고 관리하기 위해, 정복지에서 끌고 온 330가구의 백성들을 '수묘인'으로 삼았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고향을 떠나 강제 이주당했으며, 사실상 왕릉에 예속된 노비와 같은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이는 정복이 피정복민에게 어떤 고통을 안겨주었는지 보여주는 직접적이고 생생한 증거입니다
3. '한민족'이라는 프레임의 함정
우리는 종종 광개토대왕의 전쟁을 '한민족의 영토 확장'으로 이해하지만, 이는 시대착오적인 해석일 수 있습니다. 4~5세기 당시 고구려, 백제, 신라는 언어와 문화에서 유사점을 가졌을지언정, 각기 다른 정체성과 이해관계를 가진 **치열한 경쟁 상대이자 명백히 다른 국가**였습니다.
고구려의 남진, 백제와 신라에게는 '침략'
고구려가 신라에 쳐들어온 왜구를 격퇴해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후 신라 내정에 깊이 간섭하며 사실상의 영향권 아래 두려 했습니다. 백제 아신왕은 고구려에 패배한 뒤 "영원한 노객(奴客, 신하이자 종)"이 되겠다고 맹세해야 했습니다. 신라와 백제의 입장에서 광개토대왕은 민족의 수호자가 아니라, 자국의 주권을 위협하는 북쪽의 강력한 침략자였을 것입니다.
[5세기 당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세력권을 나타내는 지도]

4. 문화의 전파인가, 문화 제국주의인가?
정복 활동 이후, 고구려는 피정복 지역에 자신들의 문화를 강력하게 이식했습니다. 고구려식 고분 양식, 토기, 생활양식 등이 만주와 한반도 남부까지 퍼져나갔습니다. 이는 한편으로는 선진 문화의 전파이자 국가 통합을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시각에서는, 정복자의 문화가 피정복민의 고유한 문화를 억누르고 소멸시키는 **'문화 제국주의(Cultural Imperialism)'**의 초기 형태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고구려 중심의 질서가 강화될수록, 백제, 신라, 동부여, 거란 등 여러 세력이 가졌던 문화적 다양성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고구려의 기상과 문화를 보여주는 무용총 수렵도]

5. 나의 생각: 영광의 빛과 그늘을 함께 바라보기
이 글을 쓰면서, 저는 광개토대왕이라는 인물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그는 분명 혼란했던 동북아의 질서를 바로 세우고, 고구려의 국력을 최정점으로 끌어올린 위대한 군주였습니다. 그러나 그를 '완벽한 민족의 영웅'으로만 칭송하는 일방적인 시선에는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영웅 서사는 필연적으로 그 영광을 위해 희생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지우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의 사건에는 언제나 여러 개의 진실이 존재하며, 그것들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 더 깊고 성숙한 역사 인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광개토대왕의 용맹함과 전략적 탁월함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그의 칼 아래 스러져간 수많은 생명과 파괴된 공동체의 아픔을 기억하는 시선을 함께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신라의 금관]

6. 마치며: 영웅을 넘어, 시대를 읽는 눈
역사를 배우는 진짜 목적은 특정 인물을 숭배하거나 민족적 자부심을 고취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과거의 복잡한 층위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그 속에서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갈등과 질문에 대한 통찰을 얻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광개토대왕의 정복 전쟁은 고구려에게는 영광의 역사이자, 동시에 수많은 피정복민에게는 상처의 역사였습니다. 이 이중적인 시선을 통해, 우리는 '영토'와 '민족' 그리고 '국가'란 무엇인지 더욱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영웅의 시대를 넘어, 역사의 시대로 나아가는 길일 것입니다.
📚 참고자료
- 국립중앙박물관, 『광개토대왕릉비와 고구려사』
- 조법종, 『이야기 한국고대사 2 - 고구려』
- 동북아역사재단,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
- 김용만, 『새로 쓰는 고구려 역사』
- 『삼국사기』 - 고구려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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