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재해석

삼국통일, 신라의 외세 동맹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최선’이었나?

사색폴리오 2025. 6. 10. 07:00

 

 

 

 

삼국통일, 신라의 외세 동맹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최선’이었나?

― 고구려나 백제가 통일했다면 달라졌을 한반도의 운명


1. '통일'이라는 이름의 영광, 그 이면의 질문

우리는 학창 시절부터 신라의 삼국통일을 우리 민족사 최초의 위대한 대업으로 배워왔습니다. 뿔뿔이 흩어져 있던 세 나라를 하나로 합쳐, 오늘날 '한민족'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는 오랫동안 통일 서사의 중심을 차지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 '통일'이라는 단어에 우리는 너무 익숙해진 것은 아닐까요? 만약 패배한 고구려나 백제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것은 과연 영광스러운 '통일'이었을까요, 아니면 외세를 등에 업은 '정복'이었을까요? 이 글에서는 신라의 삼국통일이 가진 명분과 한계를 냉정하게 분석하고, '만약 고구려나 백제가 통일했다면?'이라는 대담한 상상을 통해 역사의 다른 가능성을 탐구해보고자 합니다.
 

매소성 전투(출처 : 월간조선)

2. 벼랑 끝의 선택, '나당동맹': 득과 실의 냉정한 계산서

신라가 당나라와 손을 잡은 것은 당시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백제 의자왕의 공격으로 대야성을 비롯한 40여 개 성을 빼앗기고, 북쪽에서는 고구려가 끊임없이 압박해오는 진퇴양난의 상황이었습니다.

김춘추의 외교, 생존을 위한 승부수

이에 김춘추(훗날 태종무열왕)는 먼저 고구려에 구원을 요청했지만, 연개소문에게 거절당하고 옥에 갇히기까지 합니다. 가까스로 탈출한 그는 마지막 선택지로 바다를 건너 당나라로 향합니다. 그는 당 태종에게 고구려와 백제를 정복한 후, 평양 이남의 땅을 신라에 넘겨준다는 조건을 약속받고 마침내 나당동맹을 성사시킵니다. 신라의 입장에서는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무열왕 표준영정(출처:나무위키)

 

외세 개입의 대가: 안동도호부와 나당전쟁

나당연합군은 660년 백제를, 668년 고구려를 차례로 멸망시킵니다. 하지만 당나라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옛 백제 땅에 웅진도독부를, 고구려 땅에는 안동도호부를 설치하고, 심지어 신라까지 지배하려는 야욕(계림도독부 설치)을 드러냈습니다. 결국 신라는 통일을 완수하기 위해 자신들을 도왔던 당나라와 7년간의 처절한 전쟁, 즉 나당전쟁을 벌여야만 했습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하여 당군을 몰아냈지만, 그 대가로 고구려의 광활한 북방 영토를 대부분 상실하게 됩니다.


3. 만약(What if): 다른 통일의 가능성

이제 가정해봅니다. 신라가 아닌 고구려나 백제가 통일을 주도했다면, 한반도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고구려가 통일했다면? 대륙을 호령하는 북방 제국

  • 광대한 영토: 만주와 요동, 한반도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영토 국가가 탄생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훗날 거란, 여진, 몽골 등 북방 민족과의 관계에서 훨씬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 강력한 군사 문화: 끊임없는 전쟁을 통해 성장한 고구려의 기마 군단과 성곽 방어 시스템은 통일 국가의 핵심 정체성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는 보다 상무적이고 대륙적인 기풍의 문화를 형성했을 수 있습니다.
개마무사(출처 : 한국경제)

백제가 통일했다면? 바다를 지배하는 해상 교역 국가

만약 근초고왕 시절의 영광을 되찾은 백제가 통일을 이룩했다면, 한반도의 정체성은 보다 개방적이고 해양 중심적인 방향으로 나아갔을 것입니다.

  • 해상 교역 강국: 일본, 중국 남부, 동남아시아와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다채로운 문화를 갖춘 국가가 되었을 수 있습니다.
  • 문화의 다양성: 다양한 문물과 사상이 유입되며 불교뿐만 아니라 고대 동아시아의 다양한 사상이 공존하는 다문화 국가의 성격을 띠었을지도 모릅니다.

4. 마치며: 역사는 선택의 연속이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분명 한민족 형성의 중요한 계기였지만, 그 이면에는 외세의 힘을 빌린 정복과 그에 따른 대가가 있었습니다. 고구려나 백제가 통일을 이루었더라면, 한반도의 정체성은 지금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역사는 언제나 하나의 길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현재는 수많은 '선택'의 결과라는 점에서, 과거를 되돌아보는 상상은 우리에게 중요한 통찰을 안겨줍니다.
 

7세기 지도(출처: 우리역사넷)